정실 칼럼

상담단상괜찮지 않은 사람이어도 괜찮다

관리자
2026-07-09
조회수 25


괜찮지 않은 사람이어도 괜찮다.



기독교인 상담을 하다보면 종종 자신이나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 내지는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신념이 꽤 많다. 트라우마사건이 깊었던 이들이 대개의 경우 삶의 태도에 극단적인 방식을 취하는데, 상처로 꽁꽁 묶여 가해자들과 가해환경을 비난하고 저주하며 살거나 또는 치유회복의 과정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괜찮아야한다는, 나는 좋은사람이라는 결론에 빨리 도달하여 그 지점에 서서 자신과 상황을 판단한다. 기독교인의 경우 후자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깊은 아픔과 불안을 종교 방어화한 면이 없잖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신념이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객관화하기 어렵고 이후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대응하는 면에서도 취약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런 분들과 상담실에서 가족조각을 하며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남편이나 아내와의 역동과 에피소드분석대화를 할 때면 지난 사건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가족의 문제와 역기능에도 자꾸만 그들이 좋은사람이었다는 방향으로 귀결시키려는 조급함을 본다. 
가족 조각을 한참 응시하며, 그들이 '나빴어' 느껴진 자리 그대로 두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엄마가 또는 내 남편이 진짜 별로였구나 하는 지점에 그들이 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불안해 미칠 것 같은 내담자의 눈빛이 흔들리며 눈물을 쏟아낸다. 그저 사람은... 그런 존재인 거다. 나 역시 그런 비참함이 나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 정말 그래도 괜찮다. 상담은 물론 거기까지 같이 간다.
상담자와의 사랑과 지지의 관계 안에서 내담자는 가족의 괜찮지 않음과 자신의 비참함을 마주하게 될지라도 그것을 응시할 힘을 얻는다. 그 자리에서 버틸 수 있게 되면 다음 한걸음 내딛기는 좀 더 수월해진다. 
인생의 고통을 혼자 극복하고자 발버둥치던 기독교인일수록 지난 인생과 가족에 대한 미화작업이 너무 견고하게 방벽되어 오히려 자기 존재를 향한 궁극의 빛이 비출 때에 충분히 누리고 회복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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